변소에 낙서해 『조선 왕조 실록』에 오른 사람


chosun.jpg사관이 궁중에서 일하며 사초를 기록할 때 꼭 왕의 언행만을 적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 왕조 실록』의 곳곳에는 신하들이 한 말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인품과 행위에 관한 사관들의 평가도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그리하여 한때 위세를 날리던 고관 대작들에 대해서도 비록 면전에서 허물을 들추지 못했다 할지라도, 뒷날 실록을 작성할 때 그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사관의 입을 빌어 기록되곤 했다. 그 가운데 재미있는 것은 화장실에 낙서한 일이 폭로된 권진의 경우다.

선조 34년(1601) 8월 13일의 「선조 실록」에는 왕이, 구성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최기를 승정원 동부 승지로, 박진원을 시강원 문학으로, 권진을 형조 정랑으로 임명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록의 끝부분에 형조 정랑 권진에 대한 사관의 인물평이 붙여져 있다.

권진은 반목이 심하고 사악했다. 유생일 때에 일찍이 이산해와 홍여순의 사람됨을 미워해, 산사에서 독서하면서 변소에 두 사람의 이름을 붙여 놓고는 변소에 갈 때면 반드시 그 이름을 불러 천시하고 미워하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급제해서는 먼저 이산해에게 붙었고, 그 뒤 이산해를 배반하고 다시 홍여순에게 붙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침을 뱉었다.

 


사관에 따르면 권진은 요즘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민첩한 기회주의자인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권진도 화장실에 남긴 자신의 낙서가 4백여 년 뒤까지 전해질 줄은 정녕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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