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은 김치 맛을 못 보았다


chon.jpg대통령이 검소하게도 칼국수를 자주 드신다는 것은 지금은 웬만한 국민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구중 궁궐 깊은 곳에서 왕이 무엇을 먹는지는 자세히 알려질 수 없었다. 다만 영조 44년(1768) 7월 28일 「영조 실록」에는 드물게 왕의 음식 타령이 기록되어 있다.

 
내의원 신하가 임금을 뵙자 임금이 말했다.

“송이·날 전복·어린 꿩고기·고초장(고추장), 이 네 가지 맛이 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그러고 보면 입맛이 완전히 늙은 것은 아니다.”


그러자 도제조 김양택이 말했다.

“그러시면 날 전복을 공물로 올리도록 지시하겠습니다.”

임금이 말했다.

“그만둬라. ‘공자는 꿩고기를 냄새만 세 번 맡고 일어났다’고 했다. 날 전복을 갖다 바치는 데 공이 많이 들므로 영의정이 어사로 있을 때 ‘한 마리 전복도 민폐를 끼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지금 민간에 병충해가 몹시 심한데, 어찌 정당한 공물 외에 때가 아닌 물건을 구해 배를 채우겠는가? 마땅히 바쳐야 할 것 말고는 받지 않겠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고추장에 관한 대목이다. 고추장은 김치와 더불어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다. 외국에 원정간 선수들이 고추장과 김치를 먹고 힘을 냈다는 말도 있다. 이처럼 이들 음식은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민족적 일체감과 자부심을 상징하는 ‘정신적 지주’의 하나로 승격해 있다. 그러나 고추장과 김치는 한국의 고유한 음식일 수는 있어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할 만큼 오래된 음식은 아니다.


고추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1615년부터였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시뻘건 김치와 고추장은 그 이전에는 있을 수 없었다. 고추 대신 쓰이던 것은 후추였는데, 이 또한 대마도나 중국의 사신이 왕에게 선물로 바치던 것이라 일반 백성들은 구경하기도 어려운 귀한 물건이었다. 조정의 대신들도 특별한 날에 왕으로부터 몇 알씩의 후추를 하사받았을 뿐이다. 그래서 조선 중기까지의 김치는 고추가 들어가지 않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백김치와 동치미 또는 간장으로 버무린 장김치밖에 없었다.


요즘 김치 재료로 가장 많이 쓰이는 배추 또한 서양 종자를 개량한 것으로서 19세기 말에야 우리 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과 같은 모습과 맛의 김치는 겨우 1백 년의 역사를 거쳐 가장 한국적인 음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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