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은 성균관 학생들의 야간 통행증


chon.jpg한국 전쟁 이후 몇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야간 통행 금지 제도를 없앤 것은 제5공화국이라는 인기 없는 정권의 민심 수습책이었다.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계속되는 통행 금지 시간에 예외로 나다니려면 위급한 사정을 인정받고 임시 통행증을 발급받아야만 했다. 이 임시 통행증은 종이에 증명서 식으로 된 것이었는데 팔뚝에다 고무 도장을 찍어 줄 때도 있었다.


조선 시대에도 야간 통행 금지 제도가 있었다. 통행 금지는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였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궁궐문은 초저녁에 닫고 해뜰 때에 열며, 도성문은 인정에 닫고 파루에 연다”고 되어 있다. 인정은 통금 시작을 알리는 스물여덟 번의 종소리를 말하고 파루는 통금 해제를 알리는 세른세 번의 종소리를 말한다. 종을 스물여덟 번 치는 것은 우주의 일월 성신 28수에 고하기 위함이요, 서른세 번은 하늘의 33천에 알려 그 날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이었다


모든 일에 예외가 있듯이 야간 통행 금지 제도가 실시되던 조선 시대에도 야간 통행증이 있었는데 성균관 학생들의 야간 통행증은 바로 왕이 하사한 술잔이었다. 효종 시절에 왕은 은으로 만든 술잔을 성균관에 내렸는데 그 술잔에는 ‘성균관에 하사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혹시 제사를 지내거나 왕에게 상소할 때에는 깊은 밤이라도 유생이 이 술잔을 가지고 나가면 순찰하는 나졸도 감히 묻지 못했다.


그런데 영조 30년(1754) 1월 28일 성균관의 한 유생이 야간 통행 금지를 어겼다 해 관가로 끌려가 곤장을 맞는 일이 벌어졌다. 순찰하던 나졸이 술잔을 갖고 나온 유생을 잡아 그를 곤장으로 때리고 잔을 돌려 보낸 것이다. 성균관 유생들은 곧바로 동맹 휴학을 하고 규탄했다. 그러자 왕은 포도청 대장을 엄하게 벌하도록 명하고 유생들을 달래 학교로 돌아가도록 했다. 인왕산에 호랑이가 나타나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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