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은 무죄다!” ―― 「명종 실록」


chon.jpg임꺽정은 홍길동·장길산과 더불어 조선의 3대 도둑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홍길동과 장길산이 그러하듯이 임꺽정을 ‘남의 재물이나 빼앗는’ 도둑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임꺽정이 황해도를 근거지로 하면서 북으로는 평안도, 남으로는 경기도 일대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고 심지어 서울 한복판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활동에 대한 지지와 동참의 범위가 그만큼 넓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임꺽정 부대는 조선 시대의 다른 ‘큰 도적’들처럼 용맹 무쌍하고 신출 귀몰하는 전술을 자랑했다. 조정의 명으로 자신들을 체포하러 내려오는 토포사(도둑을 잡는 관리)를 제거하는가 하면 관아를 습격하고 옥을 부수어 갇힌 동료들을 석방시키기도 했다.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세력이 커지고 번창하자 조정에서도 임꺽정 부대를 진압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을 벌였다. 1559년 3월 27일 명종은 영의정 상진·좌의정 안현·우의정 이준경·영중추부사 윤원형 들과 함께 도적을 잡을 방도를 논의했는데 한 사관은 이를 기록하면서 그 끝부분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놓았다. 「명종 실록」을 보자.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 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 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 재상들의 탐오가 풍습을 이루어 한이 없기 때문에, 수령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 권력층을 섬기고 돼지와 닭을 마구 잡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런데도 곤궁한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너도 나도 스스로 죽음의 구덩이에 몸을 던져 요사스런 행동과 겁탈을 일삼으니, 이 어찌 백성의 본성이겠는가. 진실로 조정이 청명해 재물만을 좋아하는 마음이 없고, 수령 또한 이 같은 사람을 가려 임명한다면, 칼을 잡은 도적은 송아지를 사서 농촌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군사를 거느리고 추적해 체포하려고만 한다면, 아마 체포하는 대로 또 뒤따라 일어나 앞으로는 다 붙잡지 못할 지경에 이를 것이다.

 
1562년 1월 쫓기던 임꺽정은 결국 배신자 서림의 밀고로 잡혔다.

사필 귀정인가. 짐승처럼 쫓기다 붙잡혀 처형당한 임꺽정과 그의 도둑 무리들은, 3백 년 후 책과 영화와 텔레비젼 드라마에서 정의를 위해 일어선 영웅으로 그려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임꺽정은 조선 왕조의 법정에서는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되었지만, 오늘날의 역사는 그를 복권시키고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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