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을 처음 만든 사람은 이순신이 아니다


chon.jpg누구나 거북선 하면 이순신 장군이요, 이순신 하면 거북선을 떠올린다. 과연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이 처음 만들었을까? 정묘 호란으로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한 뒤 조심스레 군사를 정비하고 있던 1639년 7월 14일, 영의정 최명길은 인조에게 “경기 수사에게 거북선을 제조해 시험해 보게 하려는데, 이것은 이순신이 창제한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거북선을 이순신 장군이 처음 만든 것은 아니었다.

1412년 태종이 나중에 세종이 되는 왕세자와 함께 임진강을 건너다가 훈련 중인 거북선을 구경했다는 기록이 「태종 실록」에 실려 있다. 또 1414년 7월 16일에는 좌대언 탁신이 태종에게 “거북선은 많은 적과 충돌해도 적이 해치지 못하니 과연 싸워 이기는 데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해 전쟁에서 이기는 데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라고 제안하고 있다. 이처럼 조선 초부터 거북선이 활용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거북선의 역사는 최소한 고려 말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발명하진 않았지만 거북선을 가장 잘 활용해 빛나는 전과를 올린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왜선 43척을 대파하고 적을 전멸시킨 거제 앞바다의 전투는 임진 왜란 초기의 첫 승리다. 또한 전투 중 왼쪽 어깨에 탄환을 맞은 이순신이 종일 전투를 독려하다가 전투가 끝나고서야 비로소 사람을 시켜 칼끝으로 탄환을 파내게 한 사실로도 유명하다. 이 싸움을 자세히 기록한 선조 25년(1592) 5월 1일의 「선조 실록」은 거북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거북선은 배 위에 판목을 깔아 거북 등처럼 만들고, 그 위에는 우리 군사가 겨우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 자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송곳 같은 것을 줄지어 꽂았다. 그리고 앞은 용의 머리를 만들어 입은 대포 구멍으로 활용했으며, 뒤에는 거북의 꼬리를 만들어 꼬리 밑에 총 구멍을 설치했다. 양옆에도 총 구멍이 각각 여섯 개가 있으며, 군사는 모두 그 밑에 숨어 있도록 했다. 사방에서 포를 쏠 수 있게 했고 전후 좌우로 이동하는 것이 나는 것처럼 빨랐다. 싸울 때에는 거적이나 풀로 덮어 송곳과 칼날이 드러나지 않게 했는데, 적이 뛰어오르면 송곳과 칼에 찔리게 되었고, 덮쳐 포위하면 화총을 일제히 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적선 속을 가로질러 가는 데도 아군은 손상을 입지 않은 채 가는 곳마다 적선을 격파했으므로 언제나 승리했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뒤에도 거북선에 관한 기록은 가끔씩 등장한다. 그러나 그 수는 미미했으며 장갑선의 위용은 차츰 잃어 가고 있었다. 거북선에 관한 마지막 기록은 1807년 1월 10일의 「순조 실록」이다. 왕과 전 통제사 이당의 대화를 들어 보자.

“거북선이 있는가, 없는가?”

이당이 대답했다.

“있습니다. 그 모양이 거북같이 생겼는데, 1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 없이 바다에 떠다니는 것이 마치 거북이 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입과 코에서 연기가 나오므로 지금도 표류해 온 왜인들이 이를 보면 서로 놀라서 말하기를, ‘이것은 사람을 사로잡는 기계다’라고 한다 합니다.”

 
수군의 전체 병력이 1만 명이라고 보고하면서, 날쌔고 민첩하기로 이름난 거북선의 승선 인원을 1천 명으로 과장해 보고하고 있다. 한 때 용맹을 자랑하던 거북선은 이미 전설 속의 전함이 되어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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